
조폭 두목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웃기려고 만든 설정 같지만, 2001년 개봉한 영화 두사부일체는 그 엉뚱한 질문 속에 당시 교육계의 민낯을 꽤 날카롭게 담아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다시 접했을 때 저는 단순한 조폭 코미디라고만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학창 시절 은사님 생각이 불쑥 올라와 잠깐 멍해졌습니다.
은사님이 떠오른 이유, 조봉팔 선생님
영화 속 조봉팔 선생님은 제가 직접 겪어보니 정말 보기 드문 유형의 교사입니다. 학생의 성적을 조작하라는 학교 재단의 압박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끝내 교단을 떠나는 선택을 합니다. 이 장면에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런 선생님이 실제로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실제로 그런 분을 봤습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사비로 문제집을 구해다 주시고, 방과 후에 아무런 대가 없이 보충 수업을 여셨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드문지 느끼게 됩니다.
영화가 공개한 당시 교육 환경도 마냥 픽션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 사학비리(私學非理) 문제는 실제로 사회적 화두였습니다. 사학비리란 사립학교 재단이 교육 목적이 아닌 사익을 위해 학교 운영을 왜곡하는 행위를 말하며, 성적 조작, 부정 입학, 교원 임면권 남용 등이 대표적인 유형입니다. 실제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사립학교 비리 신고 건수는 2000년대 초반 꾸준히 증가한 이력이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영화 속 상춘고등학교는 이런 구조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재단 이사장이 정치권과 연결되어 있고, 교원 임면권(任免權)을 쥔 채 교사들을 압박합니다. 여기서 임면권이란 사람을 임명하고 해임하는 권한을 뜻하며, 이 권한이 재단에 있을 경우 교사들이 양심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됩니다. 조봉팔 선생님이 비리에 맞서다 결국 사직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이 구조 때문입니다.
두사부일체가 코미디 외피를 걸치고도 이 지점을 놓치지 않은 게 제 경험상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영화로 끝나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학비리 풍자와 조폭 두목이 만든 역설
영화의 핵심 재미는 역설에 있습니다. 사회가 악이라고 규정한 조폭 두목 계두식이, 정작 제도권 안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학교보다 더 '스승의 도리'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는 설정입니다. "두목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대사가 그 역설을 정확히 압축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대사는 웃기려고 만들었지만 듣고 나면 꽤 오래 남습니다.
이 역설은 단순한 웃음 코드가 아니라 카타르시스(catharsis) 구조에 기반합니다. 카타르시스란 관객이 억눌린 감정을 극적 장치를 통해 해소하는 심리 반응을 말하며, 불의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현실에서 관객이 느끼는 대리만족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두식이 비리 가득한 학교를 '접수'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도 이 구조 덕분입니다.
영화가 풍자하는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재단 이사장이 성적 조작을 요구하고 거부하는 교사를 폭행하는 장면
- 기부금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각종 비용을 거두고, 돈 없는 아이들을 교무실로 불러들이는 장면
- 학교 비리 제보를 쓴 학생을 다짜고짜 폭행하는 교장의 장면
- 양심적인 교사들이 결국 언론에 내부 고발을 결심하는 장면
이 목록을 보면 2001년 영화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지금 봐도 낯설지 않은 구조입니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KEDI) 연구에 따르면 교사의 교육 자율성 침해 문제는 2000년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사안입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흥미롭습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의 갈등, 전개, 해소 방식을 설계하는 틀인데, 두사부일체는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히어로 구조를 따릅니다. 주인공이 기존 질서 밖의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질서의 모순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공식입니다. 이 공식이 제대로 작동할 때 관객은 웃으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가 단지 조폭 코미디라는 장르적 재미를 넘어, 진짜 스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슬쩍 던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질문이 저한테는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과 직결되어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두사부일체는 20년이 넘은 영화지만, 지금 다시 봐도 충분히 유효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코미디로만 보기엔 아깝고, 사회 비판으로만 읽기엔 또 지나치게 유쾌한 영화입니다. 한 번도 본 적 없으신 분이라면 풀영상으로 보실 것을 권합니다. 편집된 요약본으로는 이 영화의 호흡과 감정선을 절반도 느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웃다가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