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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 (인식론적 한계, 악의 익명성, 패배 연대기)

by 올바띵. 2026.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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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의 얼굴을 16년 동안 찾아 헤맨 형사가 결국 마주친 건 허공이었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보고 나서 든 첫 번째 질문은 이겁니다. 우리는 과연 악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저는 영화보다 훨씬 작은 스케일에서 그 질문의 답을 맛본 적이 있습니다.

직관과 증거, 무엇이 진실을 보장하는가

《살인의 추억》은 두 형사의 수사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박두만은 직관(intuition)을 믿고, 서태윤은 물적 증거(physical evidence)를 신봉합니다. 직관이란 논리적 추론 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 인지 방식을 말하며, 심리학에서는 이를 '시스템 1 사고'라고도 부릅니다. 반면 물적 증거란 수사에서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자료, 즉 DNA 분석 결과나 서류 기록처럼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정보를 뜻합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두 방식 모두를 끝내 실패시킵니다. 박두만이 확신했던 직관은 매 용의자마다 빗나갔고, 서태윤이 목을 매달았던 DNA 감정 결과는 불일치로 돌아왔습니다. 서류에 자신의 피를 묻히는 서태윤의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처럼 읽힙니다. 가장 믿었던 것이 가장 크게 배신한다는 선언.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대학 시절 데이터베이스 설계가 얽힌 팀 프로젝트에서, 서버 오류의 원인을 저는 처음부터 "동기화 모듈 문제"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수십 번의 코딩 경험에서 나온 감이었고, 스스로도 꽤 확신했습니다. 팀원들을 설득해 해당 코드를 수정했지만 시스템은 오히려 더 마비됐습니다. 나중에 로그 데이터(log data)를 처음부터 다시 뜯어봤더니 진짜 원인은 데이터 타입 불일치라는, 너무 기본적인 문제였습니다. 로그 데이터란 시스템이 실행되는 동안 발생한 모든 이벤트의 기록으로, 오류 원인 추적에서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원시 자료입니다. 직관을 과신하느라 그 원시 자료를 건너뛰었던 겁니다.

박두만이 동료 서태윤을 처음 만났을 때 강간범으로 오인한 장면이 인상적인 건, 그 오인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덤가 잠복 중에도, 영화는 같은 실수를 반복시킵니다. 이를 인지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반증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박두만의 눈은 항상 먼저 결론을 내리고, 현실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영화 속 두 형사의 실패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박두만: 직관을 절대화하여 증거 조작을 서슴지 않았고, 결국 용의자를 잡지 못한 채 "모르겠다"는 탄식으로 무너졌습니다.
  • 서태윤: 물적 증거를 신봉했으나, DNA 불일치라는 서류의 배신 앞에 이성을 잃고 폭주했습니다.
  • 두 사람 모두: "악은 반드시 알아볼 수 있다"는 공통된 전제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인지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직관적 판단은 약 70%의 정확도를 보이며,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도 확증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박두만의 실패는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인간 인지 구조 자체의 한계를 영화화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악의 얼굴은 평범하다는 것, 그리고 관객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범인의 외모를 묻는 박두만에게 소녀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생겼어요." 이 한 마디가 저한테는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문장처럼 느껴졌습니다. 평범하다는 건 익명적이라는 뜻이고, 익명적이라는 건 누구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 개념을 미장센(mise-en-scène) 차원에서도 치밀하게 구현합니다.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구도, 배우의 동선 등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언어를 뜻합니다. 범인이 야산 나무 뒤에 숨어 피해자를 물색하는 장면의 카메라 앵글은, 나중에 서태윤이 함정 수사를 위해 같은 나무 뒤에 숨는 장면과 동일한 구도로 찍혔습니다. 관객은 그 두 장면이 겹칠 때, 범인과 형사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불쾌한 감각을 경험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강간범과 강간 피해자의 오빠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방식으로 표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조차 끝내 두 역할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 이 연출은, 악의 식별 가능성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반론처럼 읽힙니다.

영화 속 공권력의 실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연이 피살되던 날 밤, 세상을 어둡게 만든 건 범인이 아니라 등화관제 훈련이었습니다. 등화관제란 적의 야간 공습에 대비하여 민간 불빛을 전면 차단하는 방어 훈련으로, 1980년대 군사정권 시기 전국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외부의 악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내부를 더 어둡게 만든 것, 그 어둠 속에서 실제 범행이 이루어진 것은 봉준호 감독이 공권력을 또 다른 가해자로 위치시키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를 연구한 자료들에 따르면, 그의 작품에서 시스템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보다 더 근본적인 비극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살인의 추억》에서도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이 존재하며, 영화는 그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서사를 조직합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결말의 송강호 배우가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눈빛이 향하는 곳이 결국 관객 자리라는 해석을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관객에게 범인의 자리를 배정하는 순간이라는 것, 그 구조를 알고 나면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볼 때 전혀 다른 서늘함이 밀려옵니다.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범죄 스릴러로 소비하는 분들도 있고, 실화 기반의 시대극으로 접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진짜 무게는 '악을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의 붕괴'에 있다고 봅니다. 그 믿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를 고전으로 만드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서 한동안 일상 속 판단들이 달라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즉각적으로 내리는 평가, 상황을 보고 당연하게 내리는 결론들이 얼마나 허약한 전제 위에 서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한 번만 보셨다면,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만 다시 이어서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년이 메뚜기를 잡던 농수로와 16년 뒤 텅 빈 그 농수로가 연결되는 순간, 영화가 처음부터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가 훨씬 선명해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QszNXOuX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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